토트넘이 첼시와의 경기에서 2:2로 비기며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 경기의 결과에 따라 레스터 시티는 남은 경기의 승패와 관계없이 우승이 확정됐다. 우승 트로피를 아쉽게 놓친 토트넘 핫스퍼의 팬들을 제외하면, 전 세계 대다수 축구 팬들에게 레스터의 우승은 기쁘고 또 즐거운 일일 것이다.
게리 리네커는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충격이다. 감격스러워 숨쉬기조차 힘들다.”는 소감을 밝혔다. 78년 레스터 시티에서 데뷔한 그는 이전에 “레스터가 우승하면 속옷만 입고 방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매우 놀랍고 가치 있는 우승”이라며 레스터 시티의 성공을 높게 평가했다.
그렇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레스터 시티는 유력한 강등후보였다. 레스터가 시즌 중에 선전할 때도 내려갈 팀은 내려갈 것이라는 게 대다수의 관측이었다. 레스터 시티의 우승확률은 5,000분의 1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여전히 살아 있을 확률과 비슷했다. 네스 호에서 괴물이 발견될 확률과 맞먹었다. 이것은 불가능이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동화”라고 불렀다.
여우들이 만들어 낸 기적. 이를 두고 로맨스라고 표현한 마틴 오닐 감독은 “레스터의 놀라운 업적은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며 이것이 앞으로 세상에 끼칠 영향을 시사했다. 그렇다. 분명 영향을 끼칠 것이다.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희망 좋지. 근데 그 희망을 과연 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하다.
모두가 우승할 수는 없는 법이다.
우선 축구계만 보더라도 뻔하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의 능력은 다른 팀의 구단주와 팬들에겐 희망을 주겠지만, 그 희망은 동시에 다른 감독과 선수들에게는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라니에리 감독의 전술처럼 말이다. 왜 라니에리와 같은 돈을 썼는데 우승에 도전하지 못하지? 왜 레스터 시티처럼 축구할 수 없는 거지? 몸값도 비싼데 너는 왜 제이미 바디처럼 골을 넣지 못하는 거야.
누구나 레스터 시티처럼 되려고 할 것이다. 중소규모의 클럽은 제2의 레스터 시티를 원할 것이다. 궁극적인 목표가 우승은 아닐지라도, 이 놀라운 성적표는 약소구단의 목표를 더욱 끌어 올렸을 터다. 빅클럽은 큰돈을 들여 레스터 시티의 선수들을 빼 오려고 하거나, 지금 쓰는 것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우승하라고 감독들을 보챌 것이다. 노오력하라는 말 말이다.
물론 라니에리 감독과 제이미 바디, 리야드 마레즈, 은골로 캉테, 대니 드링크워터 같은 선수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들의 실력은 훌륭했지만, 이 성공에 운 역시 따랐음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전 시즌 우승팀인 무리뉴의 첼시가 이토록 몰락한 것, 아스널과 맨시티, 맨유, 리버풀, 에버튼과 같은 클럽이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을 내지 못한 것, 웨스트햄과 스토크 시티, 사우샘프턴 같은 중위권의 클럽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 역시 레스터 시티가 우승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그러나 다음 시즌 역시 다른 클럽이 레스터 시티와 같아질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으리란 보장은 아무도 하지 못한다. 레스터 시티가 우승할 확률이 5,000분의 1이었다는 이야기는, 즉 그렇지 못할 확률이 5,000분의 4999라는 뜻이기도 하다. 5000번 중의 4999번은 실패한다는 소리다. 대부분 당신의 (또 우리의) 도전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우리는 실패할 것이다.
마틴 오닐 감독은 레스터의 우승을 로맨스라고 표현하면서, 이것이 축구계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맞다. 사람들은 축구 이외의 분야에서도 레스터의 이름을 꺼내기 시작했다. 누구는 흙수저의 반란이라고 말했고, 누구는 축구 미생의 성공이라고 표현했다. 레스터처럼 노력하라! 그렇다면 당신도 그들처럼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글쎄.
미안하지만 5,000분의 1이다. 당신을 좌절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4,999가 될 확률이 높다. 이런 미담은 아름답지만, 문제가 있다. 항상 사람들에게 거짓 희망을 준다는 것이다. 로또와도 같다. 매주 한 명씩의(혹은 그 이상의)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지만, 그게 나는 아니다. 우리는 아니다. 레스터 시티는 운이 좋았지만, 당신도 운이 좋으라는 법은 없다.
스타들이 주는 희망에 도전했다 절망하고 포기한 사람들의 수는 얼마나 될까. 아마 겁 없이 자신도 그들처럼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이들의 수와 비슷할 것이다. 높은 기대가 깊은 실망을 주듯, 높은 희망은 깊은 좌절을 남긴다. 깊은 좌절은 어떤 노력도 쉽지 않게 만든다. 앞으로의 실패가 두렵기 때문이다. 또다시 상처받는 것이 겁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실패할 것이다. 우리는 망할 것이다. 우리는 안 될 것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보다 먼저 외워야 한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실패할 것이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망할 것이다.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안 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덜 실패하기 위해
물론 벌써부터 오지 않은 실패를 두려워하며, 일말의 노력도 포기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의 노력은 나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나의 투자는 나의 수익을 보장하지 않는다. 실패를 예측하고, 실패에 대비하고, 미리 좌절하라는 것이다. 실패할 줄 알고 하는 도전과 실패하지 않을 줄 실패할 줄 모르고 하는 도전의 결과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절망에도 면역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실패할 것이다. 그렇지만 노력할 가치는 있다. 실패할 줄 알고 하는 도전은, 좀 더 나은 실패를 만들어 준다. 우리는 그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것이고, 그것은 당신이 실패하지 않을 확률(성공할 확률이 아니다!)을 조금이나마 높여줄 것이다. 당신이 이번에 18위로 강등권에 그쳤다면, 이 실패는 당신이 다음번에는 17위쯤은 하게 해줄 것이다. 다음번에는 16위일지 모른다. 그렇게 한 계단씩 올라가면 된다.
우리는 결국 실패하겠지만, 노력해볼만 하다. 조금이라도 덜 실패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