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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 정당이라고 하지만 내가 산부인과 이사장이다." ⓒ뉴스1

 

불임 정당 벗어나 기쁘신가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에 별명이 하나 생겼다. ‘불임 정당’이다. 선거에 후보를 배출할 능력이 없는 정당이라는 이야기다. “불임 정당이라는 말을 가슴 아파했다.”던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6일 이인제, 원유철, 안상수의 출마 선언 이후 “불임 정당이라고 놀림을 받던 새누리당이 갑자기 애를 셋이나 낳게 됐다.”며 새누리당이 ‘불임 정당의 오명’을 벗게 된 것에 대해 기뻐했다.

 

새누리당 내외에서는 몇 번이고 이 불임 정당이라는 말이 나왔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우리를 불임 정당이라고 했지만 다산(多産) 체제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인명진 비대위원장은 이전에 “불임 정당이라고 하지만 내가 산부인과 이사장”이라 기자들 앞에서 밝힌 바 있다. 지난달 김무성 바른정당 고문은 새누리당을 불임 정당이라며 무려 비판한 적이 있다.

 

 

불임정당의 역사는 유구하다 ⓒ서울신문 故 백무현 화백

 

 

불임 정당이라는 말이 정치권에 등장했던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멀리는 97년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전 부총재가 대선에 불출마를 선언하자, 자민련이 불임 정당이 될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언론을 탄 적이 있다. 가까이는 2007년 대선, 열린우리당이 당 내외의 문제로 갈라지기 시작하자 불임 정당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 나왔었다. 당시 한나라당 강재섭 당시 최고위원 또한 ‘10년째 정권을 찾아오지 못하자 불임 정당이라는 비판을 듣는다’며 불만을 표한 바 있다.

 


불임이 비하가 될 이유는 없다


불임, 또 정당. 선거에 후보를 배출할 능력이 없는 정당. 이 비유대로라면 불임은 곧 무능이다. 그렇기에 불임은 곧 오명이 된다. 이는 한국 정치와 언론이 임신과 출산, 그리고 불임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지표다. 불임은 비하의 기표, 그러니 이곳에서는 임신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은 무능한 이들이 될 수밖에 없다.

 

'불임 정당'이라는 말 좀... ⓒ이말년

 

 

‘불임 정당’이라는 말이 정당을 ‘비하’하는 말로 쓰이기 위해서는 또한 “정당은 당연히 선거에 후보를 출마시켜야 한다.” 그리고 “(사람은)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동시에 후보를 내놓지 못하는 정당이 비판받아야 하듯, 아이를 낳지 못하는(혹은 않는) 이들 역시 비판받아야 한다는 결론 역시 도출 가능하다.

 

그러나 어불성설. 아이를 낳는 것은 개인의 의지와 자유에 달린 일이다. 임신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비하의 언어가 될 이유 역시 없다. 더군다나 ‘불임’ 대신 정당이 후보를 배출하지 못하면 당만 욕하면 될 일이지, 애꿎은 사람들을 데려다 손가락질의 도구로 삼을 필요는 없다. 달을 가리키는 데 손만 보고 욕한다고?  아니. 애초에 그 손이 잘못됐다.


약자동원 아닌 정치비판이 필요하다


이처럼 언론 등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정치용어’가 비유, 또는 함축적으로 타인을 노골적으로 비하했던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불임 정당과 비슷한 맥락에서 나오는 말이 있다. 바로 ‘식물 대통령’이다. 흔히 레임덕에 빠져 어떤 정책도 펴지 못하는 대통령을 가리키는 데 많이 사용된다. 최근에는 탄핵안이 가결된 후 박근혜 정부의 상태를 일컫는 데 사용되었다.

 

대통령은 다섯 번째 대국민 담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JTBC

 

이는 식물을 비유하는 듯 보이지만, 그 사용을 보면 노골적으로 ‘식물인간’의 뜻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물인간 상태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 ‘박근혜 대통령 식물인간 상태,’ ‘박 대통령 외교적 식물인간 상태’… 식물 대통령이라는 정치용어가 담긴 기사에 나온 내용들이다. 마찬가지로, 식물인간이 비하의 도구가 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앞에 쓴 ‘레임덕’이라는 표현 역시 비하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절름발이 오리를 뜻하는 레임덕이라는 단어는, 임기 말 공직자의 직무 수행이 오리가 뒤뚱거리며 발을 저는 것과 같다는 비유에서 나왔다. ‘오리’니 장애인 비하는 아니지 않느냐고? 이 문장을 보자. 당신은 장애가 있는 오리와 같다. 중요한 것은 오리인가, 장애인가.

 

 

...? ⓒ진중권 교수

 

 

어떤 평론가들은 상대 진영의 정치인을 공격하기 위해 ‘발달 장애’와 ‘심신장애’ 같은 말을 스스럼없이 사용하기까지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치인과 정당을 비판하기 위해서 비판해야 할 것은 정치인과 정당으로 충분하다. 그 밖의 다른 약자적 속성들을 가져와 그들을 비판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약자 비판에 더 가깝다. (끝)

 

 

 

이 글은 오마이뉴스(링크)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