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이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시대다. 세상에. 폭력시위라도 벌어졌다 치면 온 나라가 무너질 듯 벌벌 떤다. 이럴 수가. 누군가 인터넷상에서 폭력적인 말이라도 내뱉으면 모두가 분개하며 몸서리친다. 맙소사. 청소년이 즐기는 게임이나 영화에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할라치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우리의 꿈과 희망 같은 청소년이 게임 따라 폭력적으로 변하다니, 이게 얼마나 큰일인가.
모두가 폭력을 무서워한다. 모두가 폭력을 경계하고, 폭력을 저지른 이에게는 가차 없이 징벌을 내리려 한다. 그런데, 여기 모두가 환호하는 폭력이 하나 있다. 여남소로좌우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즐긴다. 심지어 이 폭력을 자주 휘두르는 이에게는 환호와 박수가 따른다. 마치 링 위에서의 합법적 폭력을 연상시키는 이것은 바로, ‘팩트 폭력’이다.
팩트, 즉 사실을 통해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해 아프게 한다는 뜻의 이 팩트폭력은 작년 한 해를 대표하는 하나의 키워드였다. 국회 청문회장에서도, 방송사의 메인뉴스에서도, 포털 뉴스 댓글창에서도, SNS 인기 페이지에서도 사이다 같은 말 뒤에는 팩트폭력이라는 찬사가 뒤따랐다. 아, 당신은 최고의 폭력배입니다. 멋져요.
이 찬사를 받기 위해서일까. 많은 이들이 이제 팩트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팩트폭력은 하나의 게임이 되었다. 누가 더 팩트를 때에 따라 적절하게 가져와 때리며 포장하는가가 이 싸움의 승패를 가르는 유일한 요소였다. 하지만 이 게임 속에는 치트와 버그만 가득했다.
팩트폭력에 동원되는 팩트에는 맥락이 제거되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맥락은 선택되어 이용될 뿐이었다. 오로지 분절되고 조각난 사실들. 예를들어 이런 식이다. 동물권을 주장하는 한 채식주의자가 있었다. 아니 웬걸, 그의 SNS 속에 그가 고기를 먹고 있는 사진이 있는 게 아닌가. 이를 발견해 두 사실을 교묘히 엮어낸 이는 팩트폭력배(?)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대체, 어떤 사람이 과거에 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이, 지금 그가 채식주의자라는 것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다른 이야기도 있다. 1번. A와 B는 서로를 때렸다. 이건 팩트다. 2번. A와 B는 모두 다쳤다. 이것도 팩트다. 하지만 진실은 팩트 그 너머에 있었다. A는 먼저 B를 공격했고, B는 이를 방어하기 위해 A를 밀쳤다. B는 얼굴 뼈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지만, A는 넘어질 뻔하다가 손에 찰과상을 입었을 뿐이다.
B는 A가 두려워 A가 자신을 폭행했음을 알리며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A의 주변인은 1번과 2번을 근거로 들어 B의 주장을 반박했다. 너도 A를 때렸으면서 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냐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주변인의 주변인들은 이를 ‘팩트폭력’이라며 B의 주장을 묵살하고, 비웃었다.
팩트폭력은 대개 이런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찾아온다. 그럴듯하지만, 자세히 따져 보면 아무 의미도 없다. 과거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한다며 몇 사실을 편집해 한 사람을 학력 위조범으로 만들어냈던 누군가가 생각난다. 아마 그가 2010년이 아니라 2017년에 활동했다면, 그는 분명 세상에 둘도 없는 팩트테러리스트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사실(fact)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truth)이다. 나는 물을 수밖에 없다. 이 팩트 강박증은 과연 옳은 것인가. 팩트폭력에는 과연 어떤 진실이 담겨져 있나, 하고 말이다. 나는 팩트가 아니라, 진실을 요구하고 싶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