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 JTBC
박근혜가 파면되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판결에 따라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부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 아니 박근혜 씨는 이제 그저 ‘민간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는 “보일러 설치가 안 되어있다.” “언제까지 퇴거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등의 핑계를 대며 퇴거를 미루다 지난 12일 저녁, 가히 성대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경호 퍼레이드를 앞세워 삼성동 자택으로 향했다. 아마 청와대에서의 그 말도 안 되는 이틀의 체류 기간 동안 자신의 범죄 증거와 기록물들을 인멸하고 파쇄 했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는 것이 그저 의심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최순실이 특검에 출석하기 전 날, 그 하루의 시간 동안 증거 인멸을 시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의도된 침묵’
그 문제도 문제지만, 지금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박근혜가 자신의 지지자들로 하여금 반정치적이고 반사회적인, 또 정당하지 못한 행위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탄핵 인용 선고 이후, 자택으로 들어가며 남긴 입장 외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정말 할 말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아마도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고, 누군가의 말마따나 (박사모나 탄기국 등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지지자 들로 하여금 ‘분노의 공회전’을 일으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공회전되는 분노는 그들의 주변에, 또 그들 스스로에게 까지 무차별적으로 분출되었는데 탄핵 선고 직후 헌법재판소 앞에서 진행된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주변 시민들과 기자들, 그리고 경찰들을 손발과 도구로 폭행하고 카메라 등 취재 장비를 빼앗기도 했다. 또 경찰 버스 위에 오르거나, 버스를 탈취해 차벽으로 돌진하는 경우, 심지어는 할복을 하겠다고 자신의 배를 칼로 찌른 사람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사망자 또한 발생했고 말이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헌재의 탄핵 선고에 불복하겠다.”는 암묵의 메시지를 지지자들에게 전달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일종의 ‘의도된 침묵’(Deliberate Silence)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12일 저녁 청와대를 떠나 삼성동 자택에 도착해서는 그곳에 몰려있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 웃고 인사하고, 또 같이 ‘셀카’를 찍기도 했다. 그리고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입장을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이는 마치 최순실이 “여기는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라고 외친 것처럼, 자신은 억울하고, 자신을 탄핵시키고(국회) 파면시킨(헌재) 이들은 ‘악’ 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정치적 선동을 하는 모습이다. ⓒ 이찬우
그런데 최순실의 외침은 “염병하네.” 라는 말로 일축이 가능한 일종의 ‘추잡함’ 이었다면, 진실 운운하는 박근혜의 말은 무게감 자체가 다른, 강력한 정치적 선동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동시에 무척이나 위험한 말이기도 하다. 그는 얼마 전까지 (비록 직무정지 상태였지만) 대통령이었고, 그의 열렬한(혹은 입금이 완료된) 지지자들이 매주 억울한 자신을 열다 못해 서울광장에 천막까지 쳤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그 이야기를 한 곳은 자신의 가장 안전한 곳이자 그 지지자들이 운집해 “대통령 박근혜”를 외치던 곳이기도 했다. 군복을 입고 태극기를 든, 마치 네오나치 그룹을 연상케 하는 외양의 ‘애국보수’ 들은 탄핵 무효를 넘어 이제는 “빨갱이는 다 죽여야 한다.” 같은 살기등등한 구호를 외쳐대며 ‘유혈 혁명’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선고 이후에는 세월호 농성장이 있는 광화문 광장에 인화물질을 들고 난입을 시도하거나 그 근처 파출소에 인화물질과 소화기를 뿌리는 행패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른바 대한문 '맞불집회'의 모습 ⓒ 장성렬
‘우리’와 ‘적’ – 전쟁 정치의 프레임
이 탄핵 정국에서, 그리고 그 이전의 세월호 국면에서 박사모나 탄기국, 어버이연합 같은 극우 세력의 행위들은 무척 위험하고 반민주적(Anti-Democratic)이었는데, 이를 두고 사회과학자 정용택은 “극우 세력들이 보여 준 일련의 집단행동은 정치가 작동하고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조건 내지는 기반 자체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것이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에 따르면 (그의 분석은 탄핵 정국 이전의 것이지만) 이른바 ‘애국보수’ 세력의 집단행동은 ‘우리’ 아니면 ‘적’으로 편을 가르고 전쟁이 끝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그 ‘적’ 들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쟁 정치’에 기반하고 있다. 즉, 배타적이고 맹목적인 동일성을 추구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자신이 ‘적’ 이라 규정한 대상, 즉 탄행을 찬성하는 세력을 이 국가에서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들이 자신들이라고 생각하는 ‘대한민국’ 이라는 국가는 사실 민주주의 국가라기 보다는 초법적이고 초월적이며, 심지어 완전무결하기까지 한 국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탄핵을 찬성하는 ‘종북’ ‘좌파’ ‘빨갱이’ 들은 그러한 유토피아를 반대하고 주적인 ‘북한’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를 팔아먹으려는 악마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마치 십자군 전쟁처럼 성전(聖戰)을 선포해 그 (악마나 이교도에 비할 수 있는)빨갱이들을 모조리 죽이거나 격퇴해 대한민국을 탈환하고 시련을 당해 탄핵된 박근혜를 부활시켜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것을 ‘민주주의’ 가 아니라 ‘십자군’ 이나 ‘파시즘’ 이라고 부른다. 예루살렘을 이교도로부터 탈환하겠다던 십자군이 그랬고, 나치가 그랬다.
선생님 그거 내란선동입니다(...) ⓒ 장성렬
민주주의의 과제 – 파시즘의 기각
이러한 파시즘적 행태는 유감스럽게도, 정치가 아니다. 도리어 반정치적(Anti-Political)인 행위, 정확히는 민주주의 정치에 반하는 모습이다. 바로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그러한 보수단체의 시위는 마치 하나님 나라같은 초법적인 국가를 상정한 다음 자신을 그 완전무결한 국가에 대입시킨다. 그리고 탄핵에 찬성하는 촛불 세력을 적으로 규정하고 노란 리본을 단 사람에게 발을 걸거나 그 리본을 빼앗는 등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격퇴하려고 한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대화’나 ‘타협’의 시도 대신 그저 ‘적대’와 ‘폭력’으로 상대에게 맞서는 것이다. 그리고 부장하게 행사되는 (국가나 자본 같은) 권력에 대한 ‘대항’ 이 아닌 국수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이지 못한 주장을 하고 있기도 하다. 달리 말하자면 대화 테이블의 주체로, 또 정치의 주체로 인정받고 배제 당하지 않기 위한 투쟁 –예컨대 노동조합의 파업 투쟁 같은- 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헌법에 보장된 저항권의 행사나 집회・결사의 자유로 보기도 힘들다.
그들이 휘두르는 폭력은 스스로 자유한국당 –정확히는 김진태나 조원진 등을 비롯한 ‘친박계’- 과 친 박근혜 정치세력의 비호를 받아 행사되는, 달리 말하면 기득권으로부터 ‘위임 받은 폭력성’ 이기도 하다. 친박 국회의원들이나 기득권, 혹은 선동가들은 그들의 분노와 폭력성을 ‘정당한 것’ 이라 부추기고 선동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의 이야기대로 ‘민심’ 도 ‘저항’ 도 아니고 ‘혁명’도 아니다. 도리어 전체주의이고 백색 테러일 뿐이다.
작금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과제는 이렇게 정치의 탈을 쓴, 백색의 ‘위임된 폭력’을 기각하고, 그 폭력으로 인해 망가진 사회적 도덕성과 그것에 기초하는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반을 회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최순실이나 우병우, 김기춘 등을 비롯한 국정 농단의 세력들을 처벌해야 한다.
그 ‘몸통’이자 최종 책임자인, 그리고 파면 이후 의도된 침묵을 통해 탄핵 반대 세력의 분노를 공회전시키고 폭력을 선동하고 있는 박근혜에게도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리는 정치적 주체로서 민주주의의 ‘아래에서부터의 회복’을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성한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해 직접 폭력을 휘두르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이득을 멈추고 그들의 주장을 기각해야 함과 동시에, 그들에게 폭력을 위임해 민주주의의 파괴를 사주하는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짐 싸! 박근혜 교도소 갈 짐 싸! ⓒ <아수라>
사유화된 폭력과 그 뒤의 박근혜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는 “국가는 폭력 수단의 독점체” 라고 이야기했다. 근대의 상비군에서 시작해 작금의 군대나 경찰 등 ‘합법적 폭력 기관’ 들이 폭력을 공적이고 합법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사례일 것이다. 이것에 대한 논쟁과는 별개로 좁게는 국가, 더 넓고 기초적으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정치・사회적 공동체에서 폭력이 사유화된다는 것은 그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유화 되고 기득권으로부터 (마치 용병처럼) 위임된 폭력은 법이나 사회적 합의에 기초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폭력은 공동체의 안전과 특히 아래로 향하는 폭력에 대한 억제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국보수’, 즉 극우 세력들은 도리어 자신들보다 약한 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적개심과 증오를 표출하고 있고 물리적 폭력 또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위에는 김진태나 조원진을 비롯한, 정치적 이익을 얻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을 사유화하고 그들에게 위임한 다음 그것을 부추기는 이들이 있고, 그들의 뒤에는 그들에게 참가비나 버스 대절비를 비롯한 ‘뒷돈’을 지원하는(혹은 지원했던) 이들이 있다. 이른바 ‘관제 데모’에 자금을 지원했음이 밝혀진 전경련 같은 조직이나 기업들 말이다. 그리고 더 위에는 결국 결국 그것을 방조했고 또 적극적으로 지시한 최종 책임자 박근혜가 있다.
4년이란 게 짧은 시간도 아닌데, 특정 세력이 민주주의 파괴하도록 와꾸 짠 거 아닌가요? ⓒ <아수라>
박근혜와 그 주변 인물들은 민주주의와 참 질긴 악연으로 연결되어 있다. 박근혜의 아버지는 유신까지 시행하며 죽을 때까지 집권한 군사 독재자였고, 박근혜의 최측근은 김기춘은 악명 높은 공안 검사였다. 그 외에도 너무 많은 이들이 권력의 뒤에 숨어 민주주의를 좀먹어 왔다. 그런데 박근혜는 파면되었고, 그 카르텔에서도 법의 심판 앞에 서게 되는 이들이 생기고 있다. 박근혜 또한 이제 곧 검찰청 포토라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이제 그 지긋지긋한 악연을 끊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이들의 폭력을 기각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