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저한테 왜...? ⓒ 스타데일리뉴스
‘탄핵 소식은 들었다. 한국 정치에 날 끌어들이려는 거라면 대답하기 어렵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에 관한 이야기는 할 수 있다.” 영화 홍보차 내한한 스칼렛 요한슨(Scarlett Johansson)의 말이다. 미국 배우에게 한국 기자들이 탄핵 관련 질문은 왜 했느냐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도록 하자. 스칼렛 요한슨은 그 대답으로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이름을 거론했다. 지금 당장에라도 그에 대한 비판을 꺼낼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미국 내 문화, 예술계 종사자들은 트럼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기에 해외에 나와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최근 래퍼 스눕독(Snoop Dogg)이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밴드 배드배드낫굳(BADBADNOTGOOD)의 곡 “Lavender (Nightfall Remix)”에 참여하고 직접 뮤비에도 등장해 도널드 트럼프를 맹렬히 비판했기 때문이다. 뮤비 속 트럼프를 연상케 하는 인물은 ‘광대’로 묘사됐고, 우스꽝스럽게 행동하다가 결국 스눕독의 총격까지 받는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선정성이 높은 뮤비처럼 보이지만, 실은 경찰의 인종차별 문제와 트럼프 당선이라는 복합적인 사회적 문제를 겨냥한 현실 풍자에 가깝다.
트럼프는 민감하게 대응했다. “한물간 스눕독이 저런 뮤비를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때 만들었으면 과연 몸이 성했을까. 분명 감옥에 갔을 것이다”라는 글을 본인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이윽고 백악관에서 운영하는 트럼프 계정도 해당 글을 복사해 올리며 비판에 가세했다. 트럼프의 변호인 또한 “정말 무례한 행동이다. 대통령 암살 시도는 재밌을 수 없는 일이다. 너무 충격적이다. 스눕독은 사과해야 한다” 라고 언급했다. 한 뮤직비디오에 정부 비판적인 시각이 담겼다고 대통령이 직접 소셜 미디어로 저격하는 세상. 업무는 뒷전에 둔 채 아티스트의 작품에 대해 2시간 동안 무례하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려도 되는 세상. 트럼프는 미국에서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다.
이 사례는 어쩌면 트럼프와 문화 예술계 종사자들의 대립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수의 연예인들은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각광 받던 순간부터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다양한 인종이 모인 곳에는 가수도, 배우도, 연예인도 다양한 인종이 구성한다. 그런 그들에게 차별적인 발언을 일삼고 여성을 성추행했던 전력을 부끄러이 생각할 줄 모르며 거짓말을 일삼는 도널드 트럼프가 달가울 리는 만무하다.
당연히 미국의 아티스트들은 트럼프에 대해 부정적인 코멘트를 자주 남기고 있다. 수년 만에 재결합해 마지막 정규 앨범을 낸 ATCQ는 두 번 다시 없을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에서의 합동 무대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비판하는 무대를 연출했다. 케이티 페리(Katy Perry)는 그래미 어워드와 브릿 어워드(BRIT Awards) 모두에서 신곡 “Chained To The Rhythm”을 부르며 트럼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무대를 꾸몄다. 이뿐만이 아니다. 메릴 스트립(Meryl Streep)은 골든 글로브 시상식(Golden Globe Awards)에서 세실 B. 드밀(Cecil B. DeMille) 상을 받은 후 수상 소감으로 트럼프의 반 이민 정책과 무책임하고 차별적인 언행을 비판한 바 있다.
ATCQ X GRAMMY 2017
미국 예술인들의 트럼프 비판은 무대 밖에서도 이어졌다.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되기 하루 전, 워싱턴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트럼프를 규탄하는 시위를 열었다. 시위의 이름은 ‘여성들의 행진(Women’s March)’. 시위를 촉발한 건 도널드 트럼프의 성추행 행적과 이에 대한 적반하장의 태도였다. 이날 참여한 인파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었으며, 적지 않은 수의 가수와 배우가 자리했다. 일부는 연단에 나가 공연을 펼치고 연설을 하며 참가자들을 독려했다.
어떤 가수들은 음악으로 트럼프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기도 했다. 우선 래퍼 커먼(Common)은 한 공연장에서 ’이 대통령이 나와 내 운명 사이에 끼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트럼프를 비판했고, 조이 배대스(Joey Bada$$)는 트럼프와 인종 차별적인 세상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싱글 “Land of the Free”의 기존 발매일을 바꿔 나흘 늦은 도널드 트럼프의 취임식 날에 공개하기도 했다. 가상 밴드 고릴라즈(Gorillaz)를 만든 데이먼 알반(Damon Albarn)은 최근 새 앨범 발매 직후 인터뷰에서 “다크 판타지에서 시작된 앨범이다. 예측 불가능한 일이 발생해서 세상을 모조리 바꿔버리는 것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건 절대 아니지만, 그가 진짜 대통령이 되면 어쩌나 하는 상상을 했었다. 불행하게도 그 다크 판타지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라며 트럼프에 대한 감정이 긍정적이지 않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시위하기 위해 워싱턴에 모인 수많은 인파
이외에도 예술인들의 반트럼프 사례는 이 글에 다 쓰기 어려울 만큼 나날이 늘고 있다. 규모가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트럼프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그 창구로 그들이 가장 잘하는 예술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그들의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트럼프는 틈날 때마다 구설에 오르고 있다. 매 주말 별장을 찾으며 백악관 경호비가 670억이나 추가로 늘어 빈축을 샀고, 오바마 케어를 비판하며 들고나온 트럼프 케어는 시작도 못 한 채 폐기됐다.
대통령이 되면 ‘골프 칠 시간도 없어서 백악관에서 일만 할 것이다.’라는 기존 공약에 코웃음 치듯 12주간 9차례나 골프장을 드나들었고, 딸 이반카의 브랜드 매장을 철수시킨 백화점에 직접 항의를 넣기도 했다. 대통령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려고 한다고 현지 언론이 지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존에 문제가 됐던 여성 성추행 또는 인종 차별적 발언은 너무 많이 터져 나오고 있어 쓰는 게 의미가 없다.
혐짤 아닙니다... 대통령입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현재의 미국은 기존에 우리가 알던 미국과 거리가 멀다. 민주주의의 기치를 내세우나 외국인의 입국은 애매한 기준을 들어 막기 일쑤고, 자국 내 인종 간 증오는 끊임없이 부추긴다. 미국을 현재의 강대국으로 이끈 개척자 정신을 대변하는 아메리칸 드림과 같은 기치는 현재의 미국과는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다. 트럼프는 미국에서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다.
어쩌면 미국 예술가들의 반트럼프 행보는 미국을 그런 세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노력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노력이 과연 얼마나 더 진행될 수 있을까. 어떤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지지를 더 많이 얻게 될까. 그리고 그 지지는 모든 걸 바꾸는 트럼프의 모든 걸 바꿔버릴 수 있을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또 다른 드라마틱한 변화를 꿈꾸는 건 그리 큰 비용의 사치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