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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가 돌아왔다. 3집 [Modern Times]에 이은 4년 만의 정규앨범이다. 청자들에게 자신의 분열과 충돌을 거리낌 없이 들려주며, 잔뜩 힘을 주었던 미니앨범 [CHAT-SHIRE]와는 달리 한껏 편해진 목소리다. 음악 감독 이병우가 작곡, 작사, 편곡을 맡은 ‘그렇게 사랑은’을 제외하면 모든 곡에 작사가로 참여했다. 모든 곡이 “전부 제 이야기”라는 그는, 그저 악기에 불과했던 몇 년 전과는 다르게 자신의 앨범 전반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올해로 데뷔 10년 차를 맞은 아이유는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한 번에 몇 보씩은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Pallete]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한 축에는 사랑을 막 시작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곡들이 있다. 아련한 기타 리프 위에 자신의 목소리를 몇 겹으로 쌓아낸 화음의 ‘밤편지’는 익숙한 듯 다르다. 가사 역시 아이유가 그동안 내세우던 다채로운 표현들보다 훨씬 잘 다듬어져 있다. 선우정아가 참여한 ‘잼잼’은 권태기limit가 오기 전에 ‘한껏 녹여’달라고 끈적하게 노래한다. 설탕과 같은 사랑을 계속해 얹어 달라고 이야기하는 목소리에는 달관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이제 권태기를 맞아 이별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커플의 노래가 펼쳐진다.


오혁과 함께 한 ‘사랑이 잘’은, 2000년대 초반 JYP 감성의 멜로디 위에 펼쳐지는, 미안하다는 말조차 지겨워진 한 커플의 대화다. “떠올려봐도/피부를 비비고 안아봐도/입술을 맞춰도 잘” 되지 않는 이들의 체념한 듯한 목소리는 그래서 오히려 저리다. 이들은 “사랑해 줄 거라며 다 뭐야”하고 원망하고 “너는 더 행복할 자격이 있어”(이런 엔딩)라며 안녕을 빌던, 기나긴 이별은 “많이 보고 싶지만/널 다시는 만나지 않았음” 좋겠다고 노래하며 마침내 ‘마침표’를 찍는다. 아이유의 목소리만큼 작사 역시 절제되어 있고 담백하다. 이제는 쏟아지던 빗물 때문에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던(미아) 울부짖는 목소리도, 이런 사랑은 ‘하루도 더 못(을의 연애)’하겠다던 퉁명스러움도 찾아볼 수 없다.



지난 앨범의 스물셋과 제제, Red Queen이 그랬듯, 마찬가지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팔레트’와 ‘이 지금’, ‘이름에게’는 주목할만한 트랙이다. ‘이 지금’은 아이유의 별명인 ‘이지금’에서 나왔다. 팔레트는 여러모로 아이유의 현재를 잘 보여주는 곡이다. “스물셋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극과 극의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스스로를 드러냈다면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 정도는 짚어낼 수 있을 정도”라서 적어 내려갔다는 가사에는 아이유의 취향과 세상을 대하는 관점이 배어 있다.


“이상하게도 요즘엔 그냥 쉬운 게 좋아”라는 첫 마디는 이번 앨범의 방향성을 짚을 수 있게 하고, “I like it. I’m twenty five/날 미워하는 거 알아/I got this. I’m truly fine/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이라는 부분에 와서는 아이유의 엔터테이너 또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엿볼 수 있다. “가사의 톤을 알고, 트랙과 잘 어울리고, 스물다섯이 아닌 선배로서의 조언을 주면서 여유와 위트도 표현할” 수 있어 피쳐링을 부탁했다던 지드래곤의 랩은 어느 정도 곡과 잘 맞아 들어간다. 스물 다섯에 ‘크레용’을 불렀던 그는 스물다섯 아이유의 ‘팔레트’ 위에서 노래를 부른다. 다만 “지은아 오빠는 말이야 지금 막 서른인데”로 시작되는 가사는 자칫 꼰대질로 읽힐 수 있어 아쉽다. 이를 인식했기 때문인지 아이유 역시, 지난 23일 방송된 [SBS 인기가요] 무대에서 해당 부분의 가사를 “지은아 뛰어야 돼/시간이 안 기다려 준대/치열하게 일하되/틈틈이 행복도 해야 돼”로 고쳐 불렀다. (물론 무대에 지드래곤이 설 수 없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이라 노래 부르는,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참 예뻤던’, 소녀는 이제 없다. 아이유를 보는 대중의 시선은 이중적이었다. 어떤 이들은 “예쁜데 작곡까지 잘한다”며 국민여동생이라는 이름 아래 그를 끊임없이 대상화하지만 한편으로는 “신봉선을 닮았다.”는 말로 대표되는 외모비하와 함께 우영과의 ‘꽃등심 사건’을 호출하기도 한다. “여우인 척 곰인 척” 하던 그는 ‘스물셋’에서 그랬듯 때때로 그 시선을 배신하기도 하고 순응하기도 해왔다. 하지만 “예쁜데 작곡까지 잘하는” 국민여동생이라는 허상은 지금의 아이유에게는 오히려 모욕에 가깝다. 수년 전에 이미 넘어버린 허들이기 때문이다.


아이유는 짧은 시간 동안에 놀라울 정도의 음악적 성취를 해냈다. 단지 예쁜 멜로디를 잘 쓰던 작곡가에서 이제는 적절한 선택과 배제를 통해 곡 전체의 분위기와 흐름을 조절할 수 있는 작사가로 진화했음을 지난 [CHAT-SHIRE]와 이번의 [Pallete]를 통해 잘 볼 수 있다. 물론 이번 앨범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앨범구성이 하나의 유기체로 잘 짜여 있다고 말하기 어렵고,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경향성을 찾기 어렵다는 데에서 약간의 아쉬움은 있다. 그렇기에 아이유는 아직 미완의 아티스트처럼 보인다. 그가 지금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에게서 여전히 발전의 여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스물다섯 살의 리오넬 메시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유는 대한민국 음악사에 길이 남을 여성 뮤지션이 될지도 모른다. 그의 음악은 매 앨범 성장하고 발전한다. 우리는 어쩌면 아이유와 동시대에 살고 있음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