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서 한 사진을 봤다. 내용은 어떤 할머니께서 매실 10kg짜리 다섯 박스를 공판장에 팔았는데 수령한 금액이 만 원, 정확히는 수수료 9700원을 떼고 '300원'이었다. 매실 50kg 팔고 받은 돈이 고작 300원이라니, 농업에 대한 대우가 어느 수준인지 잘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이었다.(이 사진은 2014년 6월에 SNS 상에 처음 올라와서 이미 한 차례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2015년 11월 14일, 백남기라는 칠순의 농민이 최루액이 섞인 초고압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그리고 그는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졌지만 백 일이 넘게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다. 그가 외쳤던 것은 쌀 시장 개방, 정확히는 밥쌀 시장의 개방을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둘은 테러리스트가 아니었다.
농민 백남기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다. (뉴스타파)
그저 농사를 지어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걱정 안 하고 농사를 지어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는 것이 그들이 죽거나 식물인간이 되게 한 원인이었다. 농업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것이 뻔한 국가와 정부 앞에서 그 소망은 반역이었던 것일까? 아마 그런 것 같다. 12년을 사이에 둔, '반역의 평행이론'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급률이 그나마 80%대를 상회하는 쌀을 뺀 곡물자급률은 기껏해야 5% 수준이라는 것이다. 밀과 옥수수는 자급률이 1%도 안 되고 콩도 11% 선인데, 이건 가히 '식량 재앙'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그나마 자급률이 높다는 쌀도 자급률이 높은 것은 아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쌀의 자급률은 120%대, 못해도 100%대를 상회했는데, 지금은 WTO와 FTA등의 지속적인 농업시장 개방의 영향으로 자급률이 점점 떨어졌고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 그 꿈은 누구의 꿈이었을까. (사진: 동아일보)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이던 시절, 17만 원이던 쌀값(80kg 기준)을 21만 원대로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된 지금 쌀값이 오르기는커녕, '최후의 보루' 인 밥쌀 시장마저 개방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또 정부가 쌀을 수매하지 않으니 농민들은 공판장에 현재 평균 시가인 약 17만3천 원에 쌀을 판매할 수밖에 없고, 헐값에 쌀을 넘기다 보니 식량주권 이전에 농민의 생존도 위협받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수입쌀은 막걸리용, 산업용 등으로 수입되고 있다.
대부분이 한-미 FTA 등을 통해 수입된 미국산 쌀이고, 한-중 FTA를 통해 중국산 쌀도 대규모로 수입될 전망이라 한다. 이런 대규모 수입쌀이 밥쌀의 영역까지 침범하게 된다면 쌀 자급률 또한 잠식당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나마 가장 높은 쌀 자급률이 무너진다면, 농민의 생존과 식량주권 모두 우리의 손을 떠나게 될 것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많은 제 3세계 국가들은 대부분 저성장과 저발전에 시달리고 있다. 그 국가들이 경제발전을 이루기 어려운 이유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에 의해 농·수·축·산업을 포함한 기반산업부터 잠식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경제지표가 높지 않더라도 식량의 자급률이 높고, 그러한 기반을 중심으로 경제가 성장하던 제 3세계 국가들이, 강대국에 의해 예속되는 과정을 겪는다. 다국적기업이 진출하고 식량 자급률이 점차 하락하며, 농업 등 기반산업이 파괴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국가들의 식량 주권과 경제는 강대국과 다국적기업에 예속될 수밖에 없으며, 빈부격차와 착취 또한 증가하게 된다(그리고 그 과정에선 대개 민주주의 정부가 군사 쿠데타 등에 의해 전복되고 독재체제가 등장하곤 한다).
한국이 아무리 경제대국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위의 사례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사실 한국의 농·축산업, 특히 농업은 이미 다국적 기업과 세계화에 잠식당하다시피 한 상황이다. 정부마저 국내의 농업 생산자들을 내팽개치고 수입에만 열을 올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식량, 특히 주식이라 할 수 있는 곡물의 가격은 점점 떨어지고 있고, 그 때문에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적자" 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과 "논밭을 팔고 상품작물을 재배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나오게 된 것이다.
'식량주권'이라는 것은 실재한다. '수입 쌀 좀 먹으면 어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 이미 충분한 양의 쌀이 생산되는 판국에 계속 필요 이상의 수입 쌀을 수입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무엇보다 농사짓는 농민들에게 사실상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리고 주권을 팔아버린다는 -국가주의적으로 들리기 좋은- 말을 쓰지 않더라도, 식량 자급률이 무너지고 밥쌀 시장 또한 잠식당한다면, 언제 우리 목에 칼이 들어올지 모르는 일이다. 이미 개방 반대와 생존권 쟁취를 위해 싸우던 이경해는 불귀의 객이 되었고 백남기는 생사의 기로 가운데에 홀로 서 있다.